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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해외 도자기 역사

by 포터리글레이즈 2020.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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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본문과 관계x)

 

 

고대 이집트의 유물로는 B.C. 5000년경의 토기가 있습니다. B.C 3000년경은 이미 알칼리 유약을 사용해서 만든 청록색의 도자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B.C 1500년경은 그런 청록 유약 아래에 망간으로 저온유 도자기가 제작되었습니다. 당시 도자기는 접시 외에 인물이나 동물 신상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채화된 것도 많았습니다. 기술이 점차 인근으로 퍼지면서 메소포타미아, 이란에서 B.C. 1500년부터~ B.C. 1000년년경에 채화된 제품이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B.C. 7세기부터 B.C. 6세기 바빌로니아 시대에는 알칼리유가 크게 발달되면서 유약을 입힌 벽돌로 바빌론의 개선문 벽면장식을 했습니다. 그 후 알칼리유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사산 왕조 페르시아 시대에 사용되면서 청록색의 도기를 제작합니다.

 

앞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B.C. 4000년경, 그리스 본토와 크레타 섬에서 유약이 없는 제품을 만들었지만 B.C. 1000년경 도리아인으로부터 침입을 받아 마케네 문명은 멸망하면서 도자기 제작도 멈추게 됩니다. 그러다 B.C. 800년경이 되면서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이후로 형태도 바뀌면서 균형이 잡혀 아름다워집니다. 코린트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졌던 것들이 해외수출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아테네가 발전하면서 제도 기술이 발달해 코린트를 압박합니다. 그로인해 그리스 신화와 관련하여 트로이 전쟁을 채화한 제품이나 신을 표현하여 지중해 각지로 판매하게됩니다.

 

B.C. 3세기 말에는 동지중해 연안쪽에 산화납이나 황화납으로 매용제로 사용하는 유약 기술이 발전하였습니다. 이는 어떤 흙과도 잘 어우러져 갈색이나 녹색의 납유 도자기가 연안 여기저기에서 만들어지게 됩니다. 로마가 발전하며 중요하게 되면서 자색 유약도 사용하게 됩니다. 로마 납유 제품은 동로마 시대 초기까지 시리아에서 많이 만들어졌으며 파르티아 왕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나 동양까지도 전해졌습니다. 파르티아는 로마의 영향을 받아 알칼리성 녹색 유약을 사용한 도자기를 제작했지만 3세기 초에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 계승되었습니다. 그리고 8세기 중엽, 아바스 왕조에 의해 급속히 발달했습니다. 이슬람 문화 영향을 받으며 세밀한 채식이 많은 페르시아 도기를 만들게됩니다.  이후 페르시아 제품은 이집트로 전해져서 13세기까지 활발히 만들어집니다. 이 때, 독일에서도 고온에서 만드는 경질 도자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게 영국으로 가면서 스톤 웨어로 크게 발달하게 됩니다.

 

16세기, 마졸리카 섬을 거쳐 이탈리아로 퍼진 에스파냐 도기 기법을 따라 만든 마졸리카는 유럽 각지로 퍼졌습니다. 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영국은 벨기에에서 온 도공이 연질 도기를 제작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온 도공이 궁중에서 사용하는 섬세한 도기를 만듭니다. 그리고 18세기에 국영제도소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16세기 때 중국에서 전해지면서 제조법이 각지에서 다양하게 연구되었습니다. 1709년 제틀리츠 고령토가 발견되고 독일에서 처음으로 자기 제작에 성공해 1710년 왕립 제조소가 설치됩니다. 이 방법은 비밀로 되어있었지만 점차 유럽 각지에서 제작하면서 오늘날에는 자기 제품은 영국, 독일, 그리고 러시아가 알려져있고 도기 제품은 에스파냐와 네덜란드가 알려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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